축구선수 출신, 이중재 변호사와의 만남
e-school 웹진이 대한축구협회 이중재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이중재 (대한축구협회 변호사)
2013~ 대한축구협회 변호사
2012 대한축구협회 법무실장
2011 대한축구협회 사외이사
2007 대한축구협회 규정자문위원
2004 제46회 사법시험 합격
통진종합고(축구부) -홍익대 건축학과(2년 자퇴)/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제적
중․고등학교 학생선수 시절
축구선수 출신 변호사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축구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신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때는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게 너무 좋았어요. 분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본교로 가서 축구부에 가입하지 않겠느냐 하셔서 본교로 옮기게 되었죠. 사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체력도 약한 편이고, 공부하기를 원하셔서 축구부 생활을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중간에 그만뒀었는데 5학년 때 새로 오신 감독님께서 다시 권유를 하셨어요. 부모님께 한 달 정도 숨기고 축구부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계속 반대를 하셨는데 축구가 너무 좋아서 고집을 부렸었죠. 결국에는 허락해주셨어요.
고등학교 시절 축구부 주장이자 경기도 최우수 선수로 뽑힐 정도로 전도유망한 학생선수 시절을 보내셨는데요, 당시 생활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국가대표가 되겠다.’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축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축구가 너무나 좋아서 시작하게 됐고 중학교도 스카우트되어서 진학했는데, 입학해서 보니 축구부 1학년, 17명 중에서 100m 달리기 기록이 제가 꼴찌인거에요. ‘내가 그렇게 잘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고 그 때부터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언덕길을 달리는 연습을 매일 매일 했습니다. 그런 저의 근성을 좋게 봐주셔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게임을 뛰게 됐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축구 실력도 괜찮은 편이었고 후배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어서 주장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운동부라고 하면 운동에만 열중하는 분위기여서 공부는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축구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대학 시절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셨습니다. 축구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건축학과에 진학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과를 정해야 했는데 홍대에는 체육관련 학과가 없었어요. 건축학과가 학과 목록의 제일 윗줄에 있어서 1지망에 건축학과를 적어서 냈더니 체육부장 선생님이 왜 건축학과를 썼냐고 물어보셨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 전까지 건축학과에 체육특기생이 입학한 전례가 없다며 건축학과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했고, 저는 건축학과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며 오기를 부렸어요. 결국 건축학과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건축학과 전공수업을 다 듣는 조건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축학과에 가지 않았다면 변호사가 못 됐을 것 같고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축구선수로서,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사실 대학생이 되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훈련하는 것, 선후배 사이의 엄격한 위계 문화, 개인적인 시간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는 것 등 모든 것이 중고등학교 축구부 생활과 다를 바가 없더군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지내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전에는 축구부 훈련을 하고 오후 3시부터는 건축학과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반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속의 영어 단어를 저만 못 알아듣고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면서 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게 됐어요. 부모님께서 초등학교까지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늘 저는 공부하기를 바라셨고, 공부를 안 하면 자격지심 갖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실감하게 됐죠. 나중에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무섭고 피하게 될 정도로 위축되기도 했고요. 대학생활은 여러모로 저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축구를 그만 두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중고등학교 시절 다른 선수들과 게임을 뛰면서 축구선수로서 스스로의 자질과 한계에 대해 깨달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운이 좋으면 프로팀에서 뛰다가 실업팀으로 옮기고 30대 즈음에는 은퇴를 하게 되는 미래가 그려졌고 축구를 그만두고 난 뒤의 미래가 막막하더라고요. 전성기 때 굉장히 축구를 잘했던 선배들도 은퇴 후에는 제대로 자리 잡고 일하는 분이 많지 않았어요. 어린 마음에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에서 인정받고 살기 어렵다는 냉혹함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운동선수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가 진짜 세상으로 나갔을 때 이방인 같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두려웠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발목 부상이 찾아왔고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일반 학부생으로 전환하여 학과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 대문자, 소문자도 구분을 못했고 대학교 1학년 때 Good Morning을 처음으로 써봤어요. 그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에 오전에는 학과 수업을 듣고 밤에는 신설동 학원 단과반에서 중학생들과 국어, 영어, 수학, 물리, 화학 수업을 들었어요.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학과 수업도 열심히 들었는데 건축학과가 따라가기도 어렵고 적성에 맞지도 않아서 계속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또 다른 시작
군 제대 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군대에서 제대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 학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일을 하던 여자친구(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됐어요.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나중에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려면 생계수단이 있어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건축학과 전공이 잘 맞지 않아서 다시 수능을 쳐야하나 고민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서점에 갔는데 공인중개사 시험 서적이 눈에 들어왔어요. 부동산 등의 중개 업무를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저 자신도 시험해보고 싶어서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고 6개월 정도 공부해서 합격을 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지만 저에게 엄청난 계기가 되었죠.
이후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 중에 민법 과목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일들을 법으로 정리한다는 점이 너무나 재밌는 거예요. 법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홍대를 자퇴하고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했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어요.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 매형, 친구들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부모님만 지지해주셨어요. 그런데 모두가 반대하니 더 오기가 생기더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속담이 있는데, 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수백만, 수천만 시도한다면 작은 금이라도 가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약 4년 6개월 후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당시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소개해주시겠어요? (공부 습관, 비법 등)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반복과 집중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여러 번 읽은 민법 책을 지금 다시 보면 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거든요. 처음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는 책의 10%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읽고 또 읽고를 되풀이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기억하게 되고 응용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시간동안 온전히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일정량의 학습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집중이 되지 않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그랬어요. 그리고 책을 보지 않을 때 오늘 배운 것을 되짚어보고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연습을 했어요. 축구를 할 때부터 습관인데, 자기 전에 오늘 했던 것들을 되짚어보고 ‘다음에는 이런 상황일 때 이렇게 해야겠다.’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봤었거든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변호사 이중재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 축구협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로서 계약서와 축구협회의 규정들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서에서 법적 이슈가 발생하거나 정책을 결정할 때 자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축구선수출신 이라는 것이 축구협회 업무를 담당하는데 도움이 되는 점이 있습니까?
네, 도움이 많이 됩니다. 축구와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대학교까지는 직접 축구를 했기 때문에 축구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고요. 선수생활을 하다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선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물을 수 있고, 그분들의 고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정책 결정 등에 대한 자문을 함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이중재의 꿈은 무엇입니까?
축구협회 입사 당시 저의 꿈 또는 하고 싶었던 일은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 부모가 가진 재력에 상관없이 축구만 좋아한다면 우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지도자의 처우 개선 등 많은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축구협회 입사 후 4년 정도가 지났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일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실행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존 제도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실행하려면 예산문제와 그동안 행하던 관습 등을 변경시켜야 하는데 한정된 자원의 문제와 사람의 행동양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개선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선수들에게 전하는 조언, 응원의 메시지
선수출신으로서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분들 중 한 분이실 것 같습니다. 학생선수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반 학생들과 같은 수준으로 국어,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를 한다면 우선 축구에 관한 규칙들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축구에 관한 규칙들은 IFAB가 제정하는데 영어로 되어 있어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어는 여러 분야에서 두루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학생선수 때는 운동에만 집중을 해서 운동 밖의 세상에 대해 생각을 못하는데 사실 인생에는 운동 이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운동에 집중하느라 공부를 멀리하는 학생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독서하는 습관을 꼭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선수시절 소설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소설책을 읽을 때 사전을 찾으면서 읽지 않잖아요. 처음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저는 소설책을 읽듯이 술술 읽어 내려가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거든요. 긴 글을 읽어내는 습관과 능력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직접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경험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의 이치를 간접적으로 얻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나 현재 회사 생활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생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선택의 문제인데, 결국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것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생선수 여러분 모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해서 자신이 목표로 삼는 가치를 본인의 인생에서 실현시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