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라는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말처럼 자신의 인생을 채워 나가는 사람이 있다.
피겨스케이팅 학생선수로 은반 위에서 10년, 스포츠 아나운서로 10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채워가고 있는 SBS Sports 김민아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은 ISU 심판에 도전하며, 또 하나의 삶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세화여자고등학교 피겨스케이팅 윤선민 학생선수가 찾아갔다.
학창시절 똑같은 시간을 보내 온 선배에게 묻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를 일일 리포터가 되어 낱낱이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여 불과 1년 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둬 온 세화여자고등학교 윤선민 학생선수.
예기치 못한 발등 부상으로 싱글에서 싱크로 팀 활동을 하며, 늦깎이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똑같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아나운서 활동을 하는 김민아 아나운서의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꼭 한 번 만나 지금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
윤선민 학생 : 선배님도 피겨스케이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민아 아나운서 : 뭐 재능이 없었지. 그리고 아킬레스건이 너무 아팠어. 부츠만 신어도 너무 아프고 운동을 하루에 5시간씩 하는데 살도 안 빠지고 모든 것이 부담이었어. 자주 다치고 무리가 가니까. 더 어려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몸은 너무 커져버린 상태였어. 내가 생각한 피겨는 12살 이전에 트리플 점프를 마스터해야 하는데 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최고의 기술적 기량을 그때 다 익히게 되잖아. 나도 중학교 때까지는 가능했는데 그 이후에는 트리플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 그때 생각엔 선수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 입상 성적을 내고, 잠정적 은퇴를 선언했어. 그리고 다시 스케이트장에 돌아가는 데 8년 정도 걸린 것 같아.
윤선민 학생 : 부상도 생기고 해서 고등학교 때 잠정적 은퇴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아 아나운서 : 사실 운동 밖에 몰랐던 학창 시절을 보냈어. 근데 아킬레스건이 너무 아팠고, 자주 다치고 무리가 가더라고. 그때 나이가 17살밖에 안 됐는데 운동을 딱 관두고 나니까 ‘당장 뭐 먹고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당시에는 좋은 대학 가는 게 목표였으니까 운동을 관두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던 것 같아. 근데 사실 공부를 꾸준히 해오긴 했었지만, 공부만 하던 학생들과 같이 경쟁을 하기에는 쉽지 않았어. 그래도 운동을 했었던 근성과 정말 하루에 8~10시간씩 운동했던 그 기억을 되살려서 공부했던 게 나한테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
윤선민 학생 : 막상 시합에 임하게 되면 여러 요인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실수가 나오곤 하는데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아 아나운서 : 사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이 좋았던 이유는 그 시간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야. 자존감도 많이 살려주고, 자신감도 키워주고, 살면서 그렇게 온전하게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은 잘 없거든. 근데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그 시간을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도 실수 많이 하고, 한번도 마음에 드는 시합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되게 즐거웠던 기억이 나. 그냥 모든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되게 즐거웠던 기억이 나. 그냥 모든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선수가 아닌 학생으로 입시를 준비하게 된 윤선민 학생선수.
하루에도 여러 번 고비가 찾아오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힌다. 이럴 때 선배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윤선민 학생 : 입시를 앞두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슬럼프가 오기도 했었어요. 그럴 때 선배님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민아 아나운서 : 사실 운동을 오래 하긴 했지만 선생님 말씀만 들었고, 또 같은 종목의 운동을 하는 친구들만 만나다가 입시를 준비하게 되니까 정말 세상이 크다는 생각을 했어.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대학을 가는 구나 이런 걸 좀 느끼게 됐던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탔던 종목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 대학이 많이 없어서 난 사실 거기에서 좀 슬럼프를 겪었던 것 같아. 근데 대학갈 때뿐만 아니라 회사를 갈 때도 그렇고 그 이후의 어떤 사회생활이 내가 준비한 거로 똑같이 기준점이 돼서 평가를 하는 건 잘 없더라고 그때 사회가 참 모질다는 것을 느꼈지.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 그냥 대학 가면 좋을 거다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사실 처음에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어. 그래서 다시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고, 그렇게 하면서 20대 초반이 처음부터 달콤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그때 당시 나는 아주 혼란스러웠던 과정이 많았었던 것 같아.
김민아 아나운서 : 선민이는 이제 수능도 봤고, 입시를 치르고 있는데 공부하면서 뭐가 제일 쉬웠고, 또 어떤 과목이 제일 어려웠어?
윤선민 학생 : 국어나 수학 같은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좀 어려웠었는데 사회 탐구 같은 건 재미있어요.
김민아 아나운서 : 입시할 때 사회 탐구 잘하면 유리하다고 하던데 유리했겠는데? 영어는 어때?
윤선민 학생 : 네 조금 유리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영어는 듣기는 좀 하는 것 같아요.
김민아 아나운서 : 나는 워낙 옛날이야기다 보니 거의 15년 전 이야기이고, 그때는 등급도 많지 않던 시대였어. 우리는 5등급 밖에 없었고, 과목도 많이 선택할 수 없는 시대였지. 그래서 지금 입시 제도를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흥미를 느낀다면 그 과목은 나중에 20대가 지나서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 될 거야. 생각해보면 나도 사회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 그리고 지금은 자기 시간에 맞춰서 e-School을 통해 부족한 공부도 보충할 수 있으니 그런 학습 제도도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잦은 부상으로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뛰어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는 선배는 피겨스케이팅 덕분에 아나운서라는 전문직과 피겨 심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선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윤선민 학생 : 현재 아나운서로 10년이 넘도록 활동하고 계신데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김민아 아나운서 : 아나운서 준비할 때 피겨스케이팅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 우린 음악이 나오면 어떻게든 해야 하잖아. 설령 실수해도 음악이 끝날 때까지 마무리해야 하듯이 방송도 그렇더라고. 사실 나는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나운서 준비를 했었거든.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는데 그냥 성격 개조 한번 해보자 싶어서 아나운서 학원에 다녔고, 또 사실은 막연히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고..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나 스스로 뭔가 바꾸고 싶다는 노력이 지금 이 직업으로 10년까지 이어오게 된 것 같아.
윤선민 학생 : 피겨 심판도 개인적으로 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김민아 아나운서 : 피겨스케이팅 심판은 선수 시절부터 나의 꿈이었어. 사실 모든 친구들이 다 코치를 하겠다고 할 때 나는 당연히 심판을 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심판을 꼭하고 싶었어. 내가 어떻게 평가받는지 궁금했던 건 아니고, 피겨 심판이 나의 꿈이었고, 대학 가자마자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여건이 안 돼서 28살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 지금은 활동한 지 7년 정도 됐고, 국내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지. 내 꿈은 ISU(국제 스케이트 연맹 인정의 기술 심판원)가 되는 거야. 10~20년 후에 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윤선민 학생 : 피겨 심판이 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김민아 아나운서 : 피겨 심판은 두 종류가 있어. 스페셜 리스트라고 해서 기술에 대해서 채점을 하는 부분과 그리고 GOE 수행평가를 측정하는 젓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 영역 가운데 어떤 영역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준비과정이 달라지는데 공통으로 트라이얼 젓지라고 해서 수련기관이 필요해 그래서 연습심판이라고도 하는데 뭐 관중석 같은 곳에서 선수들의 성적표를 가채점해보는 그런 분들을 많이 봤을 거야. 트라이얼 젓지를 2~3년 정도하고 나서 시험을 보면 국내 2급 심판이 될 수 있어. 그리고 1급 심판, 인터내셔널, 그리고 ISU까지 피겨에도 급수가 있듯이 심판에도 급수가 있고, 그 급수에 따라서 선수들의 레벨을 측정할 수 있어. 나 같은 경우에는 아직 올림픽 선수들을 평가하지 못하지. 나는 아직 D조나, C조 선수들을 평가할 수 있다면 ISU심판들은 올림픽에 가서 올림픽을 참가하는 선수들을 심사할 수 있지.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은 것 같아. 열심히 나와서 경기를 보고 채점 기준을 알아 가다보면 심판이 될 수 있을 거야.
오랫동안 꾸준히 자기 일을 하면서
‘야구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낸 선배. 학생 선수, 아나운서, 피겨 심판 꾸준히 자신의 길을 넓혀가는 선배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윤선민 학생 : 아나운서 활동과 ISU심판도 준비하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김민아 아나운서 : 사실 나는 늘 한 해 한 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어. 올해 이일을 하는데 내년에는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실 내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직업을 선택했거든. 그래서 안 해도 후회 없어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이일을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을 하게 된 거야. 근데 2018년도 또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게 됐고, 이제 3월이면 야구시즌이 시작돼서 매일 야구가 펼쳐지니까 그 야구 하이라이트 방송을 할 거고, 그 전에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ISU 전담 요원으로 평창올림픽에 가서 봉사도 할 것 같아. 또 전지훈련 취재도 가야하고, 내가 아주 막연히 스케이트를 관둘 때 평창올림픽이 세 번의 도전 끝에 2018년에 개최하게 됐었거든. 근데 나는 2014년? 그때 성취가 되면 나는 무엇이 될 거라고 써놓았던 다이어리가 있어. 2018년에 내가 그렸던 내 모습이랑 사실 많이 닮아 있어. 많이 어긋나 있다고 말 못할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스케이트를 관둘 때 노트에 앙드레말로의 꿈꾸는 자는 그 꿈을 닮아간다. 이런 말을들 되내이면서 15년 정도 되고 나니까 이제 좀 닮아가는 것 같아 2018년의 인생도 계획이 되어 있지만 2019년, 2020년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어. 근데 우선 2018년은 바쁘게 살 것 같아.
김민아 아나운서 : 선민이는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니?
윤선민 학생 : 저는 우선 한 달 후에 있을 이태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 받을 수 있게 연습하고, 영어 회화도 공부해야할 것 같아요. 큰 선생님 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코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김민아 아나운서 : 그럼 우린 또 만날 수 있겠다. 항상 선민이를 응원할게
김민아 아나운서
초등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해 고등학교 때까지 학생선수로 활동한 김민아 아나운서, 고등학교 졸업 후 학업에 매진하여 2007년 MBC 스포츠 플러스 공채 아나운서 입사하여 SBS Sport 아나운서까지 10여 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피겨스케이팅의 재능을 살려 현재는 국내 피겨스케이팅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윤선민 학생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윤선민 학생은 아시안트로피 노비스 아드벤스 3위, 롬밥드디아트로피 1위, 제29회 서울시장배 겸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예선 1위,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싱크로나이즈 스케이팅 1위, 일본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오픈 대회 주니어 1위 등 다양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졸업을 앞두고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현재는 싱크로 팀 활동을 하고 있는 윤선민 학생은 김민아 아나운서를 만나 다양한 조언을 얻으며 지도자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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