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운동소양과 운동 향유력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운동을 배우고 실행하면 우리 몸과 마음에는 운동소양이 쌓입니다.
운동을 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과 관련되어있는 운동소양은
각각 능소양·지소양·심소양이라는 세 차원으로 되어있습니다.
운동소양이 생기면 운동을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으로 (능·지·심) 즐길 수 있게 되는 운동 향유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운동소양과 운동 향유력을 최대화시키는 인문적 코칭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스포츠과학, 또는 과학적 코칭이란 표현은 매우 낯익습니다. 전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고가의 최첨단 장비와 용구, 실험장비 가득한 연구실, 더글러스 백을 쓴 채 트레드밀 위를 뛰는 선수 등의 이미지가 오버랩 됩니다.
그런데, 스포츠인문학, 또는 인문적 코칭은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선수나 코치에게는 인문학 자체도 남의 나라 이야기로 느껴지는데, 스포츠인문학은 더군다나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집니다. 인문적 코칭이란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스포츠코칭에 인문적이란 수식어가 붙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합니다.
인문학이란 것은 보통 문학, 예술, 종교, 역사, 철학 등의 분야를 포괄하지요. 물론, 언어학, 인류학, 민속학 등 기타 분야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스포츠 코칭에 직접적으로 가까운 영역을 꼽자면 이 다섯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저는 ‘학문’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와 부담감(때로는 현학성과 고리타분함)으로 인해서 ‘인문학’보다는 ‘인문지’(人文知, 人文智)라는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인문적 지식, 인문적 지성 또는 인문적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 소설, 신화, 종교, 음악, 미술, 영화 등등 서사적 방식으로 표현된 인문영역의 산출물 혹은 작품들을 말합니다. 스포츠인문학이란 스포츠가 소재로 된 인문적 지혜, 지식, 지성을 가리킵니다. 인문적 코칭은 인문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코칭입니다.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선수들에게 운동기량을 향상시키고자 할 때에 기술 및 체력 훈련활동에 더하여 인문적 지혜를 함께 체험하도록 합니다. 고난도 농구 기술과 전략만이 아니라, 감독이나 선수의 자서전, 유명한 팀이나 경기를 다룬 영화, 팬이나 시인이 농구에 감화되어 쓴 시, 농구부가 주인공인 만화, 농구와 연관된 각종 음악, 농구의 멋진 순간들을 화폭에 옮긴 회화나 사진 등을 평상시와 훈련 시에 함께 읽고 감상하고 토론합니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스포츠자서전과 시와 회화와 영화와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고 수용력도 좋습니다.
1990년대 <슬램 덩크>를 통해서 중고등학생들의 농구 붐이 일었었지요. 전무후무한 히트를 기록한 이 만화책은 지금도 여전히 농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농구입문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LA 레이커스의 유명한 농구감독 필 잭슨의 자서전 <일레븐 링즈>는 선수시절부터 감독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거쳐 온 50년 농구인생을 이끌어 준 중요한 시합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농구철학에 대해서 흥미롭게 설명해줍니다.
거장의 농구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완성되는지에 대하여 훌륭한 사례를 소상히 알게 됩니다. 매일의 훈련에 지친 선수들이 농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자극제역할을 하며, 어떤 농구인이 되고 싶은 지 강렬히 열망하게 만드는 본보기가 되어줍니다. 스포츠심리학에서 추천하는 코치의 동기부여 피드백이나 칭찬이나 멘탈 트레이닝보다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스포츠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르이지요. 하나 됨의 중요함과 함께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농구영화로는 <글로리 로드>나 <코치 카터>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패배감과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최고의 치료제 역할을 해냅니다. 농구이외에도 미식축구, 축구, 하키 등 단체 종목 영화를 통해서 팀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스포츠 시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선수들이나, 경륜이 쌓여 성찰력이 깊어진 성인 선수들 모두에게 커다란 영감을 제공합니다. 의미와 느낌이 압축된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단어와 문구를 통해서 자아, 상대, 승리, 패배, 인생 등 많은 것에 대하여 깊은 생각과 통찰력을 갖추도록 자극해줍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을 맛보는 것과 함께, 자신(과 팀)의 운동체험을 개인적으로, 또는 서로 같이 인문화 시켜봅니다. 즉, 선수들로 하여금 훈련과 시합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보며, 노래 가사를 바꿔보도록 해봅니다.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느낌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합니다.
팀원들이 모두 참여하여 공동의 미술작품을 만들어보거나, 중창과 합창기회를 가져봅니다. 팀원들에게 악기 다루기를 권장하여 관현악 협주회나 합동 연주회를 가지도록 해봅니다. 물론, 운동부가 배경이 된 연극도 좋겠지요. 이 모든 인문적 활동은 선수들이 자신의 운동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운동기술이 아닌, 인간이 선호하는 다른 표현양식(말, 글, 소리, 몸짓, 색깔, 형체 등)으로 표현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자기 종목을 기술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체험해보는 것이지요.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이런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를 모티브로 하여 유명 미술가들이 <더 히어로 -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라는 미술전시회를 가졌습니다. 박찬호 자신이 물감풍선을 던져 즉석에서 투화(投畵)도 그려보았습니다. 김영화 화백은 오래 전부터 골프를 소재로 한 동양화를 그리고 전시해오고 있습니다. 본인이 필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시는 이미 이 같은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한육상협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시인 서상택은 <육상경기장>이란 시집을, 사회인 야구인인 김요아킴 시인은 <왼손잡이 투수>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모두 자신의 스포츠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양식으로 옮겨내어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입니다.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과 냉정한 시합을 통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꼭꼭 쌓아두고 있습니다. 코치는 이 체험의 보고를 표현하고 승화시켜, 선수가 자기 스스로의 운동과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기쁨과 열정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운동체험의 인문화는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선수들은 야구와 농구와 육상 등 자신의 스포츠를 다른 시각에서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스포츠코칭의 경우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경기훈련과 시합만 하고 인문적으로 놀지 않으면 우리 선수는 운동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운동체험의 인문화를 통해 운동소양을 키워주어야만 합니다.
‘한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한 선수를 코칭하기 위해서는 온 팀이 필요합니다. 인문적 내용으로 코칭하고, 인문적 활동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선수들의 운동소양이 효과적으로, 지속적으로 함양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문적 활동이 갖는 본연적인 어려움이나 지루함이 있습니다.
일반인조차도 인문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운동만 해온 선수들이 그 즉시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일상에까지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일차적으로는, 호의적 반응 보다는 회의적 반응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것(회화와 음악 감상, 시쓰고 소설읽기, 토론하기 등)을 농구나 수영 연습과 함께 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팀의 일상과 연습환경 자체를 인문화 시키는 노력이, 실제적 코칭 활동과 함께 경주되어야 합니다. 환경조성도 코칭 활동의 일부입니다. 사회화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방식의 교육 메카니즘입니다. 일상의 지속적 접촉과 반복을 통해서 습관화시키는 것이죠. 매일 매일 생활하는 공간을 인문적으로 조성하고, 연습과 훈련의 루틴에 간접적, 직접적으로 인문적 터치를 가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랑비에 속옷 젓듯이, 선수들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지나면서 인문적인 것에 덜 불편해지면서 동화되어 가며, 더 나아가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Sport LG’라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스포츠 라이브러리(Library)와 스포츠 갤러리(Gallery)를 의미합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와 여러 층의 대상을 위한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어있습니다. ‘읽는 스포츠’라고 통칭해서 부르는데, 선수들에게 적합한 내용과 수준의 서적(및 월간지)들을 모은 책장을 운동부실이나 체육관에 비치해 언제든지 보고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소형 벽걸이 TV를 마련하여 다양한 음악을 틀어놓거나, 선수들의 운동사진들을 슬라이드화하거나, 그림, 사진, 비디오아트, 만화 등의 미술적 이미지나 명언명구들을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이외에도 유투브나 무크 등 인터넷을 통한 교육 자료와 정보들을 수시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도대체 이러한 인문적 코칭이 선수들의 실력을 드높이고 시합에 이기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는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술훈련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야구시를 읽고 태권도 영화를 보며 수영그림을 감상하는 일을 왜 시켜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구직난의 시대에 국문과에 진학하겠다는 아들에게, “소설이 밥 먹여주나?”라며 소리치는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마찬가지 심정에서 반대로, 체육교사들은 항상 이런 역정(운동이 밥 먹여주나?)을 들어왔습니다. 학부모님들은 공부 잘하고 성적을 높이는 데에 운동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납득하지 못합니다.
최근의 의학, 뇌과학, 심리학 연구들은 운동이 인지기능과 정서조절력 향상을 통하여 공부가 잘 되는 심신의 상태를 갖춰준다고 확증해주는 데도 말입니다.
정당한 질문입니다. 운동 잘 하는 것에 인문적 활동(코칭)이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는, 물론,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습니다(도대체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즉 맞대면한 상대편을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는 것에 인문적 활동들이 어떤 효용성을 지니는 지는 잘 모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스포츠계의 통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적 활동의 향유는 운동소양 함양의 필수조건입니다. 도대체 어떤 쓸모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의창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했다. 건국대학교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옮겨 체육교사 및 스포츠전문인의 양성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가지 않은 길 1, 2, 3』, 『코칭이란 무엇인가』, 『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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