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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교수 & 북성중학교 축구부

“땀에 젖은 유니폼 그것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이다” 맨유 레전드 미드필더 폴 스콜스 선수의 말처럼 초등학교 2학년부터 프로선수가 되기까지 오로지 축구 하나로 숱한 날을 땀 흘리며 뛰어온 박성화 선수. 축구 유망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최상의 전성기를 코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해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필연처럼 찾아온 현실을 딛고, 제2의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자신과 같은 꿈을 꾸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는 모교 후배들을 찾았다. 운동선수가 아닌 교수로 44명의 축구부 후배들 앞에 선 그가 들려주는 축구선수 그리고 제2의 꿈을 담은 스토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박성화 교수 & 북성중학교 축구부

1. 후배 앞에선 선배

같은 꿈,
다른 길 위에서

순천중앙초-북성중-금호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축구 하나로 매일을 한결같이 달려온 박성화 선수. 한창 전성기에 부상을 당해 강제적 은퇴를 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자신의 모교 북성중학교를 찾았다.

박성화 교수 : 안녕하세요. 북성중학교를 졸업한 여러분의 선배 박성화입니다. 간단히 저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순천중앙초-북성중-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를 거쳐서 광주 FC 프로에 입단, 축구선수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의 축구선수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24살에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강제적 은퇴를 하고 현재는 석·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양민호 감독님의 지도아래 학생선수로 그라운드를 뛰었어요. 그 당시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따고, 대부분의 대회에서 우승을 했었는데요. 14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모교 축구부 후배들 앞에 서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웃음) 특히 e-SchoolZine을 통해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타이틀로 강의를 하게 되어 같은 축구선수를 전공한 선배로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학생선수는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해야 해서 일반 학생들보다 두 세배 노력을 해야 하는데, 때론 고된 훈련으로 피곤해서, 때론 대회 참가로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뒤로 미룰 때가 있죠. 그런데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앞선 경험을 한 선배 입장에서 도움을 주고싶어요.

여러분 꿈이 뭐죠? 당연히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축구선수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축구는 당연히 잘해야 하죠. 그러나 축구를 잘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죠. 두 번째 그만큼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세 번째 운이 좋아야 합니다. 그중 운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누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여러분도 경기를 해봐서 알겠지만 슛팅을 했는데 골대를 맞고 들어갈 때가 있고, 골대 맞고 나올 때가 있죠. 그리고 골대 양 포스트 둘 다 맞은 경우도 있어요. 운이 좋은 날은 그게 맞아서 들어가고, 정말 운이 나쁜 날은 한 경기에 5~6번 골대를 맞고 안 들어갈 때도 있어요. 하나의 일화로 지인에게 들은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명지대학교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박지성 선수 이야기인데 선발 경기는 아니었지만, 선배 한 명이 감기로 경기에 불참하게 되어 대신 박지성 선수가 연습을 나가게 됐었다고 해요.

그때 박지성 선수는 연습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기량보다 200% 발휘해서 뛰었고, 그의 모습을 본 감독의 눈에 띄어 국가대표선수로 발탁이 되었죠. 그 당시 올림픽 대표 감독이 허정무 감독님이셨어요. 물론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운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운이 주어지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운이 따랐을 때의 인생 설계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인생 설계가 필요합니다.

박성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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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이 따랐을 때의 인생 설계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인생 설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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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화 교수

2. 선배의 과거, 후배의 지금

필연을
운으로 만들어 내다

한참 폼이 올라와 있을 때, 프로 선수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순간 끊어져 버린 아킬레스건. 운동선수의 생명을 앗아간 찰나의 순간. 그 몇 배의 짓눌린 좌절을 이겨내고, 필연의 시간을 견뎌낸 선배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늘 제2의 인생을 설계하라고.

박성화 교수 : 우리가 모두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활동할 당시에는 드래프트 제도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드래프트 제도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가고자 했을 때 명단을 대한축구협회에 올리면 프로 관계자들이 그 명단을 보고, 1~6순위까지 선발을 했어요. 정말 잘하는 선수가 아니고서는 선발되기가 어려웠죠. 1,500명이 명단을 올렸는데, 250명이 프로 실업팀으로 갔어요. 그럼 나머지 1,200여 명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누군가는 생산업에 종사하고, 또 누군가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해요.

여러분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운동했는데 프로팀에 가지 못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깝겠죠.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어요. 순천중앙초를 다닐 때 동기가 기성용 선수였는데 함께 소년체전에 나가 뛰었어요. 4학년 동메달, 5학년 은메달, 6학년 금메달 그렇게 소년체전의 금, 은, 동을 다 획득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전국대회에 네 번 참가했는데 그중 한 번은 우승, 세 번은 4강에 들었죠. 그리고 광주 FC와 K리그 입성까지 탄탄한 코스를 밟았죠. 한창 폼이 올라와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아킬레스건 파열로 좌절의 시간이 찾아왔어요. 아킬레스건은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튼튼한 인대로 이를 잘라서 추를 달아 견딜 수 있는 무게는 800kg이에요.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면 정상 보행하는 데 7개월이 걸려요. 가볍게 조깅하기까지는 2년이 걸리고요. 그만큼 회복 속도가 느리고 운동선수로 복귀하기도 쉽지 않죠.

학생선수 시절부터 운동하면서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제 갓 연봉을 받고, 수당이 생겨 부모님께 보답할 수 있는 시점에 당한 부상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2주 동안 베개에 파묻고 펑펑 울었어요. 성공을 위해 이 길을 걸어왔는데 왜 하필 나인가 자책하면서...,근데 다행히 그 좌절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축구선수는 35세 최대 40세까지 활동할 수 있는데 그 이후의 삶을 어렸을 때부터 늘 고민했었고, 체육 교사 혹은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또 하나의 꿈을 늘 품고 있었기에 좌절을 또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시간으로 보내자는 다짐을 했죠. 몸이 회복한다 해도 운동선수로 복귀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본격적으로 학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운동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죠 그래도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치료를 받으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어요. 나도 공부하는 법을 몰랐고, 주위에서는 비웃었죠. 운동만 한 네가 석사? 박사? 그때 오기가 생겼고, 그렇게 대학원 공부를 하고 석·박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교단에 서게 되었어요.

대학교 강의를 준비하면서 봤던 책의 내용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갑각류 알죠? 갑각류는 겉이 아주 단단하고, 속은 말랑말랑해요. 그런데 이런 갑각류가 가장 성장하는 시점이 껍질을 벗고 허물을 탈피했을 때라고 해요. 가장 약하고 연약했을 때 그 순간이 갑각류가 성장하는 유일한 시기이죠. 어떻게 보면 인간도 척추동물이긴 하지만 마음만은 갑각류가 아닌가 싶어요. 내가 가장 약해져 있을 때, 그리고 가장 힘들 때, 그때 가장 많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지금 감독님에게 혼나고,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아 죽을 것 같이 힘들지 모르지만 어쩌면 가장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박성화 교수 & 북성중학교 축구부
박성화 교수
북성중학교 축구부

3. 선배의 현재, 후배의 미래

지금부터라도
또 하나의 미래를 꿈꾸자

축구선수 그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학생으로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길 선배는 간절히 바란다. 길지 않은 운동선수의 활동 수명. 그 이후의 인생을 그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미래를 꿈꾸길 당부한다.

박성화 교수 : 계속 공부 이야기를 해서 지루할 수 있지만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운동선수로 가장 가까운 선배라고 생각해요. 나처럼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중요해요. 공부하라는 말이 수학, 영어 그런 교과 공부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도 틈틈이 읽고, 영어 단어, 한자라도 매일 꾸준히 외웠으면 좋겠어요. 한문을 하루에 한자씩만 공부해도 1년이면 365자이고, 그중 100개만 외워도 그게 어디예요?

웬만한 고사성어만 알아도 나중에 사회에 나와 대화를 나눌 때 도움이 되고,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어요. 사실 잠이 오면 자고 싶고, PC방 가서 게임 하고 싶고, 그러나 그 유혹을 다 이겨낸 사람만이 성공을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면 지금 들은 말들이 와 닿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아직 모르겠지만 대학에 가서 대회에 참가하려면 B+이상을 받아야 자격이 주어져요. 여러분도 주말 리그가 있죠? 성적이 안 되면 참가를 못 하듯이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겠지만 미리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설계했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 학교에서는 <e-School> 온라인 학습을 제공해 빠진 수업도 틈틈이 들을 수 있도록 학습을 제공하잖아요. 저는 이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동기부여를, 그리고 비전을 전달해주고 싶어요.

비전이라는 것이 배를 만들려고 할 때 선원들에게 단순히 못질은 이렇게 해라, 돛은 이렇게 세워라가 아니라 우리가 배를 만들어서 도착해야하는 멋진 섬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톱질을 잘하고, 못질을 잘 가르쳐서 배를 잘 만들면 무엇 하나요? 그 배가 거친 파도와 풍랑을 이겨내고, 무사히 섬에 도착하는 데 목적이 있잖아요. 그 목적지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고 싶어요. 잠깐이라도 상상해 보세요.

저는 처음 프로 선수가 되어서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골을 넣었어요. 관중 속에는 부모님이 계셨고, 그 모습을 보고 울고 계셨죠. 수천 명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을 때 어땠을까요?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노력해야 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뒤로 미루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해요.

성공을 하기까지 기회와 운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설령 축구로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험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축구뿐만 아니라 학자, 트레이너, 운동처방사, 심판, 경영, 마케팅 수많은 진로의 길이 있어요.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첫 번째 열심히 운동하되,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성화 교수

초·중·고·대학교 때 다 주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책임감도 컸을 것 같은데 선배님은 어떤 주장이었나요?

나는 술과 담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재미있고, 즐기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죠. 운동하고, 땀을 흘려야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심지어 금호고등학교를 다닐 때 최수용 감독님이 “성화야 너는 저녁 운동 나가지마 쉬어”라고 할 정도였죠. 주장이라면 완벽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대한 압박감도 있었지만, 성격인 것 같아요. 외박을 나가서도 제일 먼저 들어오고, 운동도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하면서 <e-School> 학습까지 벅찰 때가 있어요.

초등학교 동기로 초2 때부터 나와 축구를 같이 했던 기성용 선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초3 때부터 기성용 선수는 한쪽 방구석에서 이어폰을 꽂고, 그 당시 윤선생 영어를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훗날 외국 무대에서 뛸 거라고 이야기를 했죠.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에서 영어 시험을 봤는데 축구선수로 유일하게 전교 1등을 했어요. 지금 기성용 선수를 보면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면서 소통에도 문제가 없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했기 때문에 습관도 안 들려 있고, 힘들었죠. 우선 책상에 많이 앉아 있는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스스로 시간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았어요.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을 연습했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저녁 운동은 주로 어떤 걸 하셨나요?

내가 미드필드 출신이었는데 미드필드는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사비 에르난데스처럼 골을 넣을 수 있게 패스를 넣어주거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처럼 돌진하는 선수 등 각자 스타일이 있어요. 나는 순발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운동 때는 순발력, 스피드를 키우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사다리 놓고 스텝 운동을 한다던가, 튜브를 많이 끌었어요.

선배님, 앞으로의 목표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최연소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최연소라는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최선,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늘 겸손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할 것 같고, 궁극적인 목표는 더 학문적인 것을 연구해서 한국 축구 그리고 축구선수의 꿈을 여러 가지 이유로 다 이루지 못하고, 제2의 인생을 꿈꾸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 강의하고, 또 한국 축구에 조금이라도 발전이 되고자 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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