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가는 길
“모든 일엔 이유가 있어요. 새로운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김혜수가 형사로 등장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범죄를 추적하고 범죄자를 검거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가슴이 뛸 정도로 멋있게 느껴지는데요. 현실에서도 형사로서 사건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부산북부경찰서 형사1팀의 김화수 순경입니다. 유도선수 국가대표 출신인 김화수 순경은 무도특채로 형사가 된 후 올해 8월부터 강력범 검거 등 다양한 사건을 담당하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현재 북부경찰서 형사1팀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나요?
유도선수를 하시다가 형사가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무도특채로 41살에 형사가 되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꿈이 형사였더라고요. ‘꿈은 이루어진다’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웃음) 어릴 때부터 형사에 대한 로망이 컸었어요. 운동을 하면서 기회도 많았지만 운동에 대한 욕심이 커서 조금 더 하고, 조금 더 하다가 부상으로 기회를 놓치기도 했었어요. 그렇게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남편을 만나 울산에 왔는데, 유도, 검도, 태권도 실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도특채를 통해 형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지구대에서 1년 동안 있다가 올해 8월부터 부산북부경찰서 형사1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형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시면서 망설인 점은 없으셨나요?
이전까지는 초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형사라는 직업에 도전할 기회가 생기면서 망설임보다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다만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인 딸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들었는데, 남편도 해보라고 도와주고 시댁에서도 아이들을 돌봐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여러 상황들이 도와준 것 같아요.
무도특채 과정에서 순경님의 어떤 점이 합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세요?
유도라는 종목 자체가 선수 시절에 체중 조절을 해야 해요. 대회를 앞두고 단기간에 5kg을 빼야 하는 상황이 생기죠. 그래서 선수시절에는 먹고 싶은 걸 참다보니 운동을 그만두고서는 식탐이 생겨서 십중팔구는 살이 쪄요. 그런데 저는 운동을 그만두고 출산을 했는데도 체중 유지를 했었어요. 체력도 운동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관리가 되어 있었고요. 물론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해서 형사가 안 된다는 건 없지만, 아무래도 체력에서 조금은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채용과정에서 체력시험을 보는데 상위권을 기록했고 경찰학교에 들어가서도 교관을 했었어요. 만약 운동을 그만뒀다고 체력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면 제게 온 기회를 잡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형사에 지원한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체력관리가 잘 된 부분이 합격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유도선수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유도로 전향했어요. 그렇게 계속 유도를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에 태릉선수촌 막내로 들어가서 한체대에 입학한 후 8~9년 동안 국가대표로 선수생활을 했어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유도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2년까지 현역으로 있다가 은퇴를 했죠.
유도선수 생활이 현재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신체적으로 강한지 안 강한지를 제가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저한테 느껴지는 강한 에너지들이 있어요. 운동을 하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쌓여있는 내공이라고 할까요? 형사 업무에서 서류작성 같이 부족한 부분은 배워 가면 되지만, 강한 에너지는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운동을 하면서 인내하고 집중하고 상대방과 제 자신을 이기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운동할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돼요. 인터뷰를 하기 전 이전 호에서 사격부 학생선수들이 나온 기사를 봤는데, 사격은 정적인 운동이지만 스트레스가 커서 정신력이 무척 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사격을 한 학생선수들이 나중에 다른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이때 쌓은 강인한 정신력은 어떤 일을 하던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형사로 일하시면서 보람을 느낄 땐 언제인가요?
최근 20살 여자애가 자살시도를 했다며 지구대에서 지원요청이 왔어요. 그날따라 여경이 없었고 아무도 근처에 못 오게 해서 저한테 연락이 온 거죠. 만나보니 너무 흥분해 있어서 일단 진정시키는 게 중요했어요.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가서 얘기를 나눠보니 부모님이 다섯 살 때 이혼하고 할머니 댁에서 외롭게 자랐더라고요. 성인이 되면서 고시원에 혼자 살게 됐는데 외로움을 못 견디고 자살시도를 한 거였죠. 그래서 ‘지금 나도 경찰서 50명 중 혼자 여자다, 나도 외롭다. 그러니까 힘들 때 찾아오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다독였어요. 그러니까 다행히도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는 게 보이더라고요. 원래 자살시도자는 긴급으로 3일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요. 그 친구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계속 생각이 나고 걱정이 돼서 퇴원하는 날 전화를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당시에 자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한 말인지 알았는데 잊지 않고 전화를 할지 몰랐다고요. 그러면서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밝은 목소리를 내는데, 앞으로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 속한 팀에서 일을 꼼꼼하게 배워서 끝까지 형사를 하고 싶어요. 이 일 외에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앞으로 북부경찰서만 아니라 다른 곳에 발령을 받아서 일할 수 있는데, 제 사건만큼은 어디를 가서든 누가 보더라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또한 늦게 형사를 시작해서 진급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형사팀장을 해보는 게 꿈입니다.
학생선수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조언이라기보다는 제 경험을 보고 참고를 하는 정도였으면 해요. 사실 운동해서 성공하기 힘들어요. 아마 성공하는 운동선수들은 전체의 1%도 안 될 거예요. 그렇다는 건 곧 남은 99%의 운동선수들은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저도 그랬고, 학생선수들도 그렇고 운동을 할 당시에는 운동이 최고이자 전부라고 생각해요. 주위 선배들이나 선생님이 조언을 해도 지금은 잘 안 와 닿죠. 모두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한창 힘들 때 김미경 강사의 강연을 들으면서 위로 받았던 말이 있어요. 사람이 태어날 때 뱃속에 5가지 잘하는 걸 가지고 태어난대요. 지금 하는 운동 역시 다른 사람이 재능을 알아보고 꺼내 준 거예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여러 재능을 계발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한때 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절망도 했었지만, 나중에 얼마든지 많은 기회가 찾아와요. 만약 운동을 못하게 되더라도 그건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의 조각일 뿐이고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